Reopening Exhibition

GROUP EXHIBITION

1-2F, 1526, Sangam-dong, Seoul







Beomju Ko

Beomju Ko, Where the wind is heading, Acrylic on wood panel, 60.6 x 90.9 cm, 2025

고범주(b.1996)는 사물의 존재 방식과 시간의 층위를 탐구하는 시각 예술가다. 경성대학교에서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하며 공간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구축한 그는, 이후 국내 주요 박물관에서의 큐레이션 실무를 통해 유물, 국보 등 역사적 오브제들과의 밀접한 대면 경험으로 '기억', '보물', '유물'이라는 개념에 대한 예술적 사유를 본격화했다.


그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가 과거로 전이되는 과정, 그리고 그 기억이 소멸되거나 유물로 고착화되는 양가적 가능성에 주목한다. 작가는 디지털 매체, 조각, 회화, 설치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의 흔적을 발굴하고 시각화한다. 이 과정은 마치 스스로를 고고학자로 위치시키며,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반복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업 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Travi'는 이러한 세계관을 대변하는 아바타적 존재다. Travi는 때로는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하거나, 작은 꽃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캐릭터는 작가의 내면적 시선을 투영하는 동시에, 먼 미래 폐허가 된 세계에서 발견된 유물처럼 기능하며, 작업을 '감정의 매개체이자 시공간을 잇는 포털'로 확장시킨다.


최근 고범주는 디지털 기반 회화에 회화적 조형성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실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 배경에서 익힌 3D 모델링, 포토샵 등의 디지털 툴은 그의 시각적 언어 형성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신작 시리즈에서 그는 디지털로 구현된 이미지를 캔버스에 맵핑한 후, 화면의 정면뿐 아니라 측면까지 확장시키는 실험을 통해 회화의 평면성을 해체한다. 정면 이미지의 연장선에서 형성된 측면부의 구성은 디지털 특유의 왜곡과 매끄러운 전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회화와 디지털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가시화한다.

Seulgi Kim

Seulgi Kim, 푸른밤의 노래, Oil on canvas, 116.8 x 91 cm, 2025

김슬기(b.1990)는 푸른색을 기반으로 한 감정의 풍경 위에 '어른 아이'의 서사를 직조해나가는 작가다. 2014년 백석대학교에서 조형회화를 전공한 뒤, 2019년부터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전개해왔다.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정서적 감각이 담긴 그의 화면은 세대와 경험의 경계를 넘어 폭넓은 공감의 장을 형성한다.


작가가 포착하는 인물들은 소년과 소녀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아이도 어른도 아닌 경계에서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멍하니 사유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성장통을 내포하며, 불확실한 감정과 외로움, 그리고 아이 같은 무모한 따스함이 공존하는 복합적 존재들이다. 김슬기는 이러한 상반된 감정들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담담하게 포착하며, 감정의 이면에 자리한 섬세한 결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푸른색은 그의 작업 세계에서 감정의 농도를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내는 주조색이다. 상처와 멍을 암시하는 화면 위로 한 줄기 희미한 노란빛이 스며들며, 마치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한다는 듯 고요한 희망의 기류를 남긴다. 차가운 푸른빛의 층위와 은은한 빛의 레이어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어우러져 깊이 있는 정서적 풍경을 구축한다.


무표정한 인물의 얼굴, 그와 교감하는 작은 생명체, 그리고 이들을 감싸는 고요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는 관람자로 하여금 동화적 세계로의 몰입을 유도한다. 작가는 특정 내러티브를 강요하기보다, 인물의 시선과 정서가 열어놓은 감정의 틈새를 통해 각자의 기억과 경험이 투영되는 여백을 남긴다.


김슬기의 회화는 어린 시절의 감각과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복합적 감정들을 은유적으로 포착하며, 그 경계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의 내면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차갑지만 따뜻하게, 외롭지만 단단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안과 공명의 순간을 선사한다.



Jiyoung Park

박지영(b.1985)은 대덕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를 넘나들며 상업성과 예술성이 교차하는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도서 표지, 영화 포스터, 앨범 커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섬세한 감성과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그녀는, 2015년 이후 디지털 기반의 회화 작업에 집중하며 자연 풍경을 주요 모티프로 한 순수미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포착하는 풍경은 실존하는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상상의 결이 더해져 낯설면서도 친밀한 이상향으로 재구성된다. 그 풍경 속에는 계절의 미세한 흐름과 빛의 변주, 정적 속에 스며드는 시간의 결이 담겨 있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소박하고 침묵하는 존재들로 표현된다. 그들은 나무 아래 몸을 맡기거나, 길을 걷거나, 고요히 쉬며 자연의 품 안에 귀의한다. 작가는 이러한 시각적 내러티브를 통해 일상에서 망각된 '쉼'의 감각, 정서적 치유와 내면의 사유를 담담하게 제안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깊고 느린 호흡의 순간을 선사하는 '시각적 명상'으로 기능한다. 관람자는 화면 속 풍경과 그 안의 인물이 되어, 언어 없이도 조용히 위로받고 공명하는 시간성을 경험하게 된다.


박지영은 뉴욕, 파리, 마이애미, 마드리드, 타이베이 등 글로벌 미술 현장에서 개인전과 아트페어를 통해 작품세계를 펼쳐왔으며, 국내외 관객들로부터 ‘작품을 보면 평안한 마음이 든다’는 반응을 이끌어내며 컬렉션 요청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녀의 풍경은 특정 지역성을 재현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고요와 따스함, 감정의 여운은 문화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 정서로 공명한다.


작가노트에서 밝히듯, 그녀의 모든 창작은 '평온함'에서 발현된다. 숲을 거닐고, 바람을 감각하고, 하늘을 응시하며 존재의 무게를 내려놓는 이 순간들은 그녀에게 회복과 자유를 선사하는 시간이며, 화폭에 정제된 풍경들은 관람자에게도 그와 같은 '잔잔한 쉼'의 경험이 되기를 지향한다. 그렇게 박지영의 작업은 일출과 일몰의 순환처럼, 늘 현재성 속에 존재하며 소멸하고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조용한 위안을 전한다.



Jiyoung Park, Gentle sunset, Oil on canvas, 145.5 x 112.1 cm, 2025


Sohee Ahn


안소희 (b.1983) 작가는 제주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제주를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 속 경험을 일기처럼 기록하며 작업한다. 소소한 일상 풍경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작가만의 상상력을 더한다. 작가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관찰하며 성찰하는 모든 것들을 작업을 통해 꾸준히 드러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반려견을 포함한 가족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인간미 혹은 외로움의 정서를 위트있게 녹여내는 표현을 즐겨한다.   


그의 캔버스에는 인물이 전면에 묘사된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깊은 눈에서 작가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드러난다.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 1922-2011)의 초창기 초현실주의적 인물화에 대한 탐구를 유추하게 되면서도, 샹탈 조페(Chantal Joffe, b.1969)의 인물화와 같은 여성적 시선이 함께 전해진다.


인물의 눈동자 묘사는 그의 작품에서 지배적인 감정 전달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작가는 눈을 그리자마자 생명력을 얻는 인물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납작한 머리카락 등 만화적인 요소와 집요하리만큼 세부 묘사는 의외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전달하며, 동시에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자아낸다. 표현 재료로 유화, 색연필, 수채물감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며 정통 회화와 만화적 풍경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화풍을 펼친다.


그림 속 인물을 통해 특정한 인물을 연상하게 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는 일상적 장면을 끌어오면서도, 꿈에서나 본 듯 생경한 풍경을 혼합한다. 뻗어나온 손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여인, 연기가 피어오르는 피아노 너머 바다 풍경, 우수에 젖은 강아지 등 때로 신비롭고 때로 엉뚱한 장면들이 한 화면에 펼쳐진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이 맞닿아 있는 캔버스에 관객을 초대하고 그들과 감정을 교감하고자 한다. 작품으로 어떠한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보는 이들이 그림을 보고 웃음 짓거나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Sohee Ahn, Dreaming sea, Oil on canvas, 60.6 x 45.5 cm, 2025


                                                         

Hyeonjin Jeong

Hyeonjin Jeong, A silent greeting, Oil on canvas, 72.7 x 53 cm, 2025

정현진(b.1993)은 사소한 일상의 순간과 내면의 정서를 시각적 서사로 직조해내는 작가다. 어린 시절부터 종이 인형과 무대를 구축하며 이야기의 세계를 시각화해온 그는, 실내디자인을 전공하며 체득한 공간적 감각을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화면 속 공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감정이 흐르는 구조체로 작용하며, 인물의 시선과 몸짓은 마치 서사의 한 프레임처럼 관람자를 화면의 깊이로 초대한다.


초기에는 색연필 드로잉을 통해 미세한 색채의 결을 축적해 나갔으며, 이후 유화로 매체를 전환하면서도 특유의 따스하고 촉각적인 색채 언어는 더욱 깊이를 획득해갔다. 단일한 색조로 고정되기보다, 서로 다른 색의 층이 교차하고 침투하며 만들어내는 파동 속에서 감정의 결이 서서히 현현한다. 이러한 색의 지층은 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정서적 울림을 불러일으키며, 작가 특유의 '감정의 시간성'을 구현한다.


그의 화면 속 인물들은 주로 뒷모습의 형태로 존재한다. 자연 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멈춘 듯한 인물의 자세는 담백하게 표현되지만, 역설적으로 더 깊은 정서적 밀도를 함축한다. 이들은 직접적인 감정 표출보다는, 보는 이가 자신의 기억과 정서를 투영할 수 있는 시각적 여백으로 기능한다. 정현진의 회화는 특정 감정의 규정을 거부하며, 각자가 지나쳐온 순간들과 그 안에 침잠했던 감정들을 환기시키는 '침묵의 매개체'로 존재한다.


그림을 구성하는 색채는 고정된 대상의 색이 아닌, 주변의 빛과 감정의 파장에 따라 끊임없이 진동하고 확장되는 생명력을 지닌다. 그는 이러한 색의 흐름과 정서적 파동을 면밀히 쌓아올려, 어느덧 하나의 장면으로, 하나의 감정적 현존으로 응축시킨다. 그렇게 완성된 화면은 어떠한 주장도 없이, 다만 고요히 바라보는 이의 내면 어딘가에 스며들어 작은 공명과 위안의 순간을 선사한다.

Hezin

Hezin, Golden and crispy, Acrylic gouache on canvas, 25.8 x 17.9 cm, 2025

헤진(b.1991)은 한 번도 목격한 적 없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실내 공간을 상상하며 그리는 작가다. 대학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회화적 언어로 확장해, 빛과 색채, 온도와 정서가 머무는 장소성을 구축해왔다. 작가의 화면 속 공간은 선반 위 조용히 쌓아 올린 컵과 접시, 따스한 볕을 받아들이는 화분 등 세심한 사물들로 구성되며, 관람자로 하여금 마치 '아늑함'이라는 감각 자체를 직시하는 듯한 경험을 유도한다.


헤진의 회화는 개인의 내면 풍경과 정서의 흐름을 공간이라는 구조 속에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의 작업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을 담아내는 정서적 용기이며, 바쁜 일상 속에서 망각된 고요와 따뜻함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현실의 공간이 아닌 '머무르고 싶은 마음의 장소'를 그리며, 그 안에서 위로받고자 하는 개인의 내밀한 열망을 화면 위에 정제된 형태로 구현한다.


작가는 "존재한 적이 없기에 사라지지도 않을 공간"을 그린다고 말하며, 떠돌던 마음이 귀의할 수 있는 집, 빛과 그림자의 흐름이 선명하게 감지되는 침묵의 장면들을 기록하듯 포착해낸다. 이 과정에서 그의 시선은 사물의 물질적 존재감을 점차 희석시키고, 벽과 색이라는 추상적 요소로 수렴되며, 역설적으로 더 깊은 내면의 감정에 다가선다. 그렇게 구축된 화면은 채움보다는 '비움'을 통해 감정의 여백을 남기며, 그 자체로 작은 평온과 사적인 행복의 영역으로 확장된다.